퇴직연금은 우리의 노후를 지키는 가장 중요한 금융 자산 중 하나입니다. 정부는 지난 10년간 퇴직연금 시장을 확대하고 활성화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추진해왔죠. 특히 최근 몇 년 사이, 퇴직연금 계좌에서 '따박따박' 월급처럼 모아가는 투자 상품으로 TDF(Target Date Fund) ETF가 각광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금융당국이 이 상품에 대한 편입 제한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투자자들 사이에서 큰 혼란이 일고 있습니다. 왜 이런 논의가 시작된 걸까요? 그리고 이 논쟁의 핵심 쟁점은 무엇인지, 함께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TDF ETF는 왜 인기였나?
TDF는 쉽게 말해, 은퇴 시점이라는 특정 목표 날짜(빈티지)에 맞춰 알아서 자산 배분을 조정해주는 펀드입니다. 은퇴까지 시간이 많이 남았을 때는 주식 등 위험자산 비중을 높여 적극적으로 수익을 추구하고, 은퇴 시점이 가까워질수록 채권 같은 안전자산 비중을 늘려 안정성을 확보하는 구조죠. 직장인 입장에서는 매달 월급처럼 일정 금액을 넣어두기만 하면 전문가가 알아서 포트폴리오를 관리해주니, 신경 쓸 필요가 없어 매우 편리한 상품이었습니다.
TDF ETF는 여기에 상장지수펀드(ETF)의 장점을 더했습니다. 기존 TDF 펀드처럼 목돈을 한 번에 묶어둘 필요 없이, 주식처럼 실시간으로 사고팔 수 있는 유연성을 갖춘 것이죠. 이런 편리함 때문에 월급날이면 퇴직연금 계좌에서 TDF ETF를 매수하는 직장인들이 많았고, 그 덕에 운용 규모도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지난 17일 기준, 국내 TDF ETF의 순자산총액은 7,374억 원으로 전체 TDF 시장에서는 아직 5%에 불과하지만, 한 달 만에 14%나 늘어날 정도로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실제로 월급날인 10일과 25일에 순매수액이 급증하는 패턴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TDF ETF의 또 다른 매력은 바로 저렴한 운용 보수입니다. 기존 TDF 펀드에는 판매사에 지급하는 판매보수가 포함되어 있어 전체 보수가 높은 편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1억 원을 맡기면 연간 최대 150만 원까지 수수료로 나가는 경우도 있었죠. 하지만 TDF ETF는 판매보수가 없어 비용 부담이 훨씬 적습니다. KODEX TDF 2050 액티브 ETF는 총보수가 0.3% 수준에 불과하고, TIGER TDF 2045 ETF는 0.19%로 더 낮습니다. 장기 투자가 필수적인 퇴직연금의 특성상, 낮은 비용은 투자 수익률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TDF ETF가 투자자들의 사랑을 받는 결정적인 이유가 된 것이죠.
금융당국과 업계의 첨예한 대립
금융당국이 TDF ETF에 대해 규제의 칼을 빼 든 배경에는 '잦은 매매'에 대한 우려가 있습니다. 퇴직연금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운용되어야 노후 대비라는 본래 취지를 달성할 수 있는데, ETF는 주식처럼 매매가 자유로워 투자자들이 수시로 사고팔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신용평가사 모닝스타의 분석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미국 주식형 뮤추얼펀드와 ETF의 총수익률과 투자자 수익률 사이에 1.2%포인트의 격차가 발생했는데, 이는 투자자들이 매수·매도 시점을 잘못 잡아 발생한 결과로 분석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운용업계의 입장은 다릅니다. 업계 관계자들은 "펀드보다 매매 빈도가 높을 수는 있지만, 장기 보유 흐름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고 반박합니다. 또한, "시장 급락기에는 잠시 이탈했다가 다시 진입하는 식으로 수익률을 방어할 수 있었고, 이런 유연성이 오히려 ETF의 장점"이라고 주장하고 있죠. 즉, '잦은 매매'에 대한 우려는 단순한 가정일 뿐, 실제로는 투자자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논쟁의 근본적인 원인은 '위험자산 투자 한도' 규제와 관련이 있습니다. 퇴직연금 계좌는 원칙적으로 주식 등 위험자산에 70%까지만 투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과거 금융당국은 TDF의 장기 투자 취지를 고려해, 특정 기준을 충족한 '적격 TDF'에 한해 위험자산 투자 한도(70%)를 예외적으로 100%까지 허용했습니다. 그런데 ETF 형태로 출시된 TDF는 펀드와 유사한 포트폴리오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매매가 자유롭다는 이유로 '적격 TDF'에서 제외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는 겁니다. 이는 사실상 퇴직연금 계좌에서 TDF ETF를 통해 위험자산 비중을 높이는 '우회 투자'를 막겠다는 의도로 해석됩니다.
투자자의 선택권과 노후 준비의 미래
만약 TDF ETF가 퇴직연금 상품에서 제외된다면,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것은 다름 아닌 투자자들입니다. 저렴한 보수와 쉬운 접근성으로 꾸준히 적립해왔던 투자 경로가 막히는 것이죠. 기존 투자자들은 이미 매수한 상품을 환매하거나 계좌 내에서 자산을 다시 배분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겪게 될 수 있습니다. 이는 안정적인 노후 자금 마련이라는 퇴직연금의 본질적인 목적에 혼란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물론 금융당국의 우려도 이해 못 할 바는 아닙니다. 퇴직연금의 안정성을 지키고, 투자자들이 불필요한 손실을 입는 것을 막으려는 의도일 테니까요. 하지만 TDF 펀드와 TDF ETF를 이분법적으로 규제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도 많습니다. 같은 기능을 가진 상품인데도 형태에 따라 규제 기준을 달리 적용하는 것은 시장의 혼란만 가중시킬 수 있습니다.
이번 논란은 단순히 한두 개의 상품을 규제하는 문제를 넘어섭니다. 앞으로의 퇴직연금 시장을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지에 대한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투자자들의 선택권을 존중하고, 시장의 자율성을 보장하면서도, 노후 자금의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는 균형점은 어디일까요? 단순히 규제를 강화하기보다는, 투자자 교육을 강화하거나 합리적인 규제 완화를 통해 시장의 건전한 성장을 유도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때입니다. 퇴직연금은 우리의 미래가 걸린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참고:본 글은 투자 조언이 아닌 참고용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하며, 최종 투자 판단은 투자자 본인의 책임입니다.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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